박소희의 질투 어린 눈으로

바이올린협주곡

Tchaikovsky -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35


약 36분 29초 길이의 협주곡을 연주하기 위해 지휘자는 오른손에 들린 기다랗고 얇은 지휘봉을 휘두른다. 한 뼘 정도 높이의 받침대 앞쪽에는 연주자의 얼굴이 비칠 정도로 반짝이는 길쭉한 은색의 스틸 프레임 2개가 곧게 솟아있고, 그 위엔 15도가량 기울어진 붉은색의 나무판이 고정되어 있다. 나무판 위에는 매우 긴 협주곡임을 증명하듯 두꺼운 흰색 악보가 펼쳐져 있다. 광택이 도는 흰 보타이를 매고 검은 정장 차림에 반짝이는 구두를 신은 지휘자는 한 뼘 정도 높이의 받침대 중앙에 바른 자세로 서있고, 반원 형태의 활처럼 휘어진 스틸 프레임은 지휘자의 주위를 감싸고 있다. 길쭉한 4개의 은색 스틸 프레임은 각각 이 원호의 4분의 1지점에서 만나 한 뼘 정도 높이의 받침대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 이 역시 연주자의 얼굴이 비칠 정도로 반짝거린다.

한 뼘 정도 높이의 받침대에 올라선 지휘자의 왼쪽엔 바이올린 연주자가 30cm가량 떨어져 서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 의복 차림이지만 옷은 재질에 따라 조금씩 다른 검정을 띤다. 열정적인 연주 탓인지 그의 머리카락은 땀에 젖어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다. 왼손은 바이올린의 넥을 움켜쥔 채 고정되어 있는 반면 손가락은 빠른 속도로 4개의 현 사이를 이동한다. 오른손은 송진이 잔뜩 발린 말 꼬리털 활을 가볍게 움켜쥐고 있으며 오른팔 전체는 완벽하게 조율된 현을 타고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연주자는 바이올린 끝에 턱을 괸 채 눈을 감고 연주에 집중한다. 활이 현과 마찰할 때마다 각각의 현에서 진동이 생겨나고 이 진동은 브릿지Bridge로 전달된다. 이 진동은 흘러 바이올린의 앞판과 사운드 포스트Sound Post에 의해 뒷판으로 전달되고, 베이스 바Bass Bar를 통해 앞판 전체로 전달된다. 이 과정에서 소리는 73dB에서 85dB까지 점차 증폭된다. 소리의 진동 탓인지 연주자의 속눈썹이 약하게 흔들린다.

붉은 벨벳 시트와 금빛이 도는 철제 프레임으로 구성된 팔걸이가 없는 의자에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앉아있다. 지휘자와 바이올린 연주자를 중심으로 오케스트라 악단은 부채꼴의 형태로 퍼져있다. 이들은 모두 흰색 셔츠에 검은 자켓, 빨간 바지를 입고 도트무늬 스니커즈를 신었다. 지휘자와 바이올린 연주자의 왼쪽엔 바이올린을 턱에 괸 빨간 바지를 입고 도트무늬 스니커즈를 신은 사람들이 똑같은 박자와 속도로 팔을 움직이며 활을 켠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의 오른쪽에는 첼로 연주자들이 첼로 뒷판 상단의 가장자리를 가슴에 기댄 채 악기의 아래쪽은 다리 사이에 놓고 자리하고 있다. 그들의 오른 손은 바이올린 연주자들의 속도에 맞추어 가볍게 움직인다. 시야에 보이지는 않지만 비올라와 더블베이스,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호른, 트럼펫 그리고 팀파니 연주자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지휘자의 오른손과 바이올린 연주자의 오른팔의 움직임, 그리고 앞에 놓여진 악보대 위의 협주곡 악보를 반복적으로 훑는다. 독주 바이올린 연주자와 오케스트라는 서로 주고 받으며 레를 으뜸음으로 삼은 라장조의 빠르고 경쾌한 전개를 만들어 나간다. 어느덧 데시벨은 97을 향한다.

박소희강수빈, 이혜진, 그리고 새로운 질서와 함께합니다.